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꽤 난감한 순간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분명 이 방향이 더 좋은 것 같은데, 클라이언트는 죽어도 싫다고 할 때예요.
처음에는 이런 상황이 정말 어려웠어요.
제가 왜 이렇게 디자인했는지 열심히 설명해도 상대방은 잘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제가 보기에는 별로인 방향으로 작업을 수정해야 하는 일도 있었거든요.
특히 가끔은 이런 요청도 들어왔어요.
“글씨 좀 더 크게 해주세요.”
“이 부분 빨간색으로 확 보이게 해주세요.”
“여기 좀 더 빡! 들어오게 해주세요.”
정말 말 그대로 글씨 크게 빡! 빨간색 빡! 눈에 확 띄게 빡!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머리가 지끈해질 때가 있었죠.
물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중요한 내용을 잘 보이게 하고 싶은 거예요. 그 의도 자체는 충분히 이해돼요.
문제는 모든 걸 크게 하고, 모든 걸 강조하고, 모든 색을 강하게 쓰기 시작하면 결국 아무것도 강조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한두 번은 그냥 요청대로 수정했는데 이런 일이 계속 생기다 보니 저도 나름대로 방법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가장 자주 사용하게 된 방법이 있었어요.
말로만 설명하지 말고, 눈앞에서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시안을 보여주는 것.
저는 보통 세 가지 방향으로 준비했어요.
첫 번째는 내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시안으로
첫 번째는 당연히 제가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방향이에요.
제품이나 브랜드 분위기, 현재 시장에서 사용하는 디자인, 소비자층 등을 고려해서 제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시안을 만들었어요.
당연히 이게 제가 제일 선택받고 싶은 디자인이었죠. ㅋㅋㅋㅋ
그런데 이 시안 하나만 가져가서, '제가 보기에는 이게 제일 좋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면 생각보다 잘 안 통할 때가 있었어요.
디자이너인 저는 이미 머릿속에 완성된 결과와 이유가 있지만,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그 과정이 전혀 보이지 않으니까요.
특히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지 않는 분이라면 말로 설명한 이미지를 제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다르게 상상하기도 해요.
저는 세련되고 정돈된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심심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고, 제가 화려함을 이야기했는데 상대방은 정신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결국 ‘예쁘다’, ‘고급스럽다’, ‘깔끔하다’, ‘눈에 띈다’ 같은 추상적인 말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이미지가 너무 달랐어요.
두 번째는 클라이언트가 처음 요청했던 방향으로
그래서 두 번째로는 클라이언트가 처음 요청했던 내용을 최대한 그대로 반영한 시안을 만들었어요.
제가 봤을 때는 조금 아쉬운 방향이어도 일단 눈에 보이게 만들어드리는 거예요.
이게 생각보다 중요했어요.
말로 이야기할 때는 본인이 원하는 방향이 굉장히 좋아 보였는데, 막상 실제 디자인으로 만들어놓으면
'어? 제가 생각했던 거랑 조금 다른데요?' 하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저도 그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렇다고 클라이언트가 이상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화면으로 보는 건 정말 다르니까요.
저 역시 제가 생각한 디자인이 막상 완성되고 나면 예상했던 것보다 별로일 때가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도 가능하면 한 번은 실제 결과물로 보여드리는 편이었어요.
그래야 서로 같은 걸 보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거든요.
세 번째는 그 분야에서 가장 무난한 시안으로
마지막 하나는 너무 튀지도 않고 너무 특별하지도 않은, 해당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도의 디자인을 준비했어요.
쉽게 말하면 비교 기준을 하나 만드는 거예요.
제가 추천하는 디자인, 클라이언트가 원했던 디자인, 그리고 무난한 디자인.
이렇게 세 개를 같은 화면에 놓고 비교하면 이야기가 굉장히 쉬워졌어요.
'첫 번째는 이런 장점이 있고, 두 번째는 요청하셨던 내용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런 느낌이고, 세 번째는 현재 이 분야에서 흔히 사용하는 정도의 방향입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씩 설명할 수 있으니까요.
신기하게도 이렇게 직접 비교할 수 있게 보여드리면 제가 추천한 방향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꽤 많았어요.
말로 백 번 이야기할 때보다 화면에 세 개 띄워놓는 게 훨씬 빨랐어요.
수정은 디자이너의 숙명인데, 정말 자주 겪는 일이 있어요
디자인 일을 하면 수정은 피할 수 없어요.
정말 숙명에 가까운 것 같아요.
그런데 일을 오래 하면서 거의 정해진 코스처럼 반복해서 겪은 일이 하나 있었어요.
제가 처음에 A라는 시안을 만들어요.
클라이언트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요.
그래서 요청대로 열심히 수정해서 B를 만들어드려요.
그러면 B를 한참 보다가 이런 말이 돌아와요.
'음... 다시 보니까 A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처음 걸로 다시 해주세요.'
진짜 신기해요.... 다들 어디 같은 학원에서 이 루트를 배우고 오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어요.
처음 몇 번 겪었을 때는 B를 만들면서 A 파일에 그대로 덮어쓴 적도 있었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요.
A로 돌아가자는 순간 다시 처음부터 만들어야 해요.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체력은 체력대로 빠지고, 나는 분명 이미 한 번 만들었던 걸 또 만들고 있고.
진짜 비효율의 끝이에요.
그래서 저는 어느 순간부터 시안 원본은 절대 덮어쓰지 않았어요.
A는 A대로 저장하고, 수정이 들어가면 B를 따로 만들고, 다시 수정하면 C를 만드는 식으로요.
아무리 클라이언트가 '이건 이제 안 쓸 것 같아요'라고 해도 원본은 일단 가지고 있었어요.
언젠가 다시 찾을 가능성이 정말 높거든요.
이건 거창한 디자인 기술은 아니지만 실무에서는 시간을 엄청나게 아껴주는 습관이에요.
초안부터 100% 힘을 다 쓰지 않는 것도 방법이에요
그리고 일을 하면서 하나 더 터득한 게 있어요.
처음 보여드리는 초안을 꼭 100% 완성해서 가져갈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저도 무조건 완벽하게 만들어서 보여주려고 했어요.
디자이너니까 당연히 제가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으로 만들어서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완성도가 높은 시안을 가져가도 수정 요청은 들어오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이것도 어느 정도 사람 심리인 것 같아요.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디자인을 의뢰했는데 처음 나온 결과물에 바로
'네, 좋아요!' 하고 끝내면 뭔가 내가 제대로 참여하지 않은 것 같고, 괜히 손해 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잖아요.
물론 모든 클라이언트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실무에서는 이런 경우가 꽤 있었어요.
문제는 이미 100% 완성된 결과물에서 굳이 수정할 곳을 찾기 시작하면 이상한 부분에 손을 대기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폰트를 괜히 키우고, 색을 하나 더 넣고, 중요하지 않은 요소를 강조하고...
그러다 보면 처음에 괜찮았던 디자인이 점점 산으로 갈 수도 있어요.
그래서 진행 과정이나 초안을 공유해야 할 때는 70~80% 정도까지 완성해서 보여주는 방법을 쓰기도 했어요.
전체적인 방향과 분위기는 충분히 알 수 있지만 아직 마무리할 부분이 남아 있는 상태인 거죠.
그리고 그냥 보여드리는 게 아니라 같이 설명했어요.
'현재는 전체 레이아웃과 메인 방향을 잡은 상태이고, 여기에는 이런 요소를 더 넣고, 이 부분은 조금 더 정리해서 완성할 예정입니다.'
이렇게요.
그러면 클라이언트도 디자인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고, 저도 불필요하게 완성된 부분을 다시 뜯어고치는 일을 줄일 수 있었어요.
그 상태에서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받고 마지막 20%를 보완해서 100%로 만들어드리면 높은 확률로 서로 만족하는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힘을 덜 쓴다는 게 대충 만든다는 뜻은 절대 아니에요.
수정할 가능성이 높은 단계에서 너무 일찍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는 것!
저한테는 오히려 이게 더 효율적인 작업 방식이었어요.
사실 매번 여러 시안을 만들 시간은 없어요
물론 현실에서는 항상 세 가지 시안을 여유롭게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디자인 업무라는 게 일정이 넉넉한 날보다 급하게 만들어야 하는 날이 훨씬 많았거든요.
오늘 요청받고 내일까지 달라는 일도 있고, 오전에 받아서 오후에 확인해야 하는 작업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두 가지 정도만 준비하기도 했어요.
하나는 제가 추천하고 싶은 방향.
다른 하나는 비교가 될 수 있는 방향.
여기서 제가 예전에 종종 쓰던 약간 꼼수 아닌 꼼수가 하나 있었는데요.
정말 제가 추천하는 방향으로 가고 싶은데 설명만으로는 설득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제가 원하는 시안은 완성도를 충분히 높여서 만들고 비교 시안은 조금 평범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일종의 선택 설계였던 것 같아요.
물론 일부러 못생기게 대충 만들어서 속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두 가지 방향을 보여주되, 제가 추천하는 쪽의 장점이 조금 더 명확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정도였어요.
근데 효과는 꽤 좋았답니다. (속닥)
클라이언트가 틀린 게 아니라 보는 기준이 다른 거였어요
경력이 조금 쌓이고 나서야 알게 된 게 있어요.
처음에는 클라이언트가 제 디자인을 거절하면 속으로 ‘아니, 이게 더 예쁜데 왜 싫다는 거지?’ 생각할 때가 있었어요.
특히 신입 때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디자인을 배웠고 이게 내 전문 분야인데 왜 내 말을 안 듣지? 하는 마음도 아주 조금은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일을 계속 해보니 단순히 누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와 보는 기준 자체가 달랐어요.
디자이너는 전체적인 조화나 트렌드, 가독성, 색, 레이아웃 같은 걸 보지만
클라이언트는 본인 제품에서 꼭 보여주고 싶은 기능이나 매출, 내부 의견 같은 전혀 다른 조건을 같이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상대방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이유가 있는 경우도 많았어요.
반대로 디자인적인 부분은 제가 더 많이 알고 있으니 제가 설득해야 하는 순간도 있었고요.
결국 중요한 건, 누가 이기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어요.
어쨌든 말보다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훨씬 빠르더라고요
제가 이 방법들을 어디서 정식으로 배운 건 아니에요.
회사에서 누가 이렇게 하라고 알려준 것도 아니었고요.\
여러 클라이언트와 일을 하면서 수정하고, 다시 만들고, 또 엎어지고, 또 원래대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하나씩 생긴 방법들이에요.
말로 한참 설명했는데도 서로 이해하지 못해서 다시 수정하고, 또 설명하고, 또 만드는 것보다 처음부터 비교할 수 있는 결과물을 보여주는 게 훨씬 빨랐어요.
그리고 초안은 수정할 여지를 남기고, 원본 파일은 무조건 보관하고요.
결국 디자인 실무에서는 잘 만드는 것만큼이나 수정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그리고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하느냐도 정말 중요하더라고요.
물론 모든 클라이언트에게 100% 통하는 마법 같은 방법은 아니에요.
가끔은 시안 세 개를 가져가도 제가 가장 예상하지 못한 걸 고르는 분도 계십니다. ㅋㅋㅋㅋㅋ;;;
그래도 적어도 서로 다른 걸 상상하면서 끝없이 수정하는 시간은 정말 많이 줄일 수 있었어요.
지금도 누군가에게 디자인을 제안해야 한다면 제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방법들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