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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2학년 때 포토샵을 처음 만난 이야기

by 디자이너 소엘 2026. 8. 11.

포토샵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90년대생인 제가 그 시절에 포토샵을 만지기에는 꽤 이른 나이였죠.
그때 저는 컴퓨터로 그림 그리는 걸 정말 좋아해서 그림판을 자주 가지고 놀았어요.

마우스로 낙서도 하고, 색칠도 하고, 이상한 그림도 엄청 많이 그렸던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제가 그림판으로 놀고 있는 걸 보더니 갑자기 다른 프로그램 하나를 보여주셨어요.

'이게 그림판보다 훨씬 더 재밌는데 한번 해볼래?'

그러면서 켜주신 게 포토샵이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 2학년짜리한테 포토샵을 던져주신 것도 좀 웃겨요.ㅋㅋㅋㅋㅋ

 

 

영어로 가득한 화면인데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어요

제가 초등학생이던 때는 2000년대 초반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처음 접한 포토샵은 지금처럼 친절하지도 않았고, 메뉴도 전부 영어였어요.

그런데 8살, 9살짜리가 영어 메뉴를 보고 뭘 알았겠어요.

당연히 아무것도 몰랐죠.

 

그래서 그냥 하나씩 눌러봤어요.

이걸 누르면 뭐가 나오나, 저걸 누르면 뭐가 바뀌나 궁금해서 계속 클릭했어요.

그림판에서는 마우스로 그리면 그냥 선 하나가 나왔는데 포토샵에는 브러시 종류가 여러 개 있더라고요.

그게 저는 너무 신기했어요.

 

똑같이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인데도 브러시 모양이 다르고, 크기도 바꿀 수 있고, 이것저것 만질 수 있는 게 너무 많았어요.

어린 제 눈에는 거의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진짜 그림판처럼 썼어요

물론 처음부터 포토샵을 멋지게 썼던 건 아니에요.

그냥 그림판 대신 그림을 그리는 데 썼어요.

브러시를 바꿔보고, 색을 바꿔보고, 잘못 누르면 이상한 게 생기고, 또 지워보고.

그런 식으로 계속 가지고 놀았어요.

 

그러다가 점점 할 줄 아는 게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레이어가 뭔지도 모르면서 써보고, 사진에 이것저것 효과도 넣어보고, 글씨도 얹어보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포토샵을 공부했다기보다 그냥 놀면서 익힌 것 같아요.

누가 정답을 알려준 것도 아니고, 시험을 봐야 해서 외운 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재미있어서 계속 만졌어요.

 

 

 

 

 

장미가족의 포토샵교실이라는 카페를 만나면서 완전히 빠졌어요

조금씩 포토샵에 익숙해질 때쯤, 당시 정말 유명했던 다음 카페가 하나 있었어요.

바로 장미가족의 포토샵교실.

 

2000년대 초반에 포토샵을 해본 사람이라면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 카페에 가입해서 강의를 정말 많이 봤어요. 심지어 책도 샀어요.

사진 보정하는 방법부터 글씨에 효과를 넣는 법, 여러 이미지를 조합해서 하나의 작품처럼 만드는 방법까지 정말 다양했어요.

 

그걸 하나씩 따라 하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하나를 배우면 또 다른 걸 해보고 싶고, 그걸 하고 나면 또 새로운 기능이 궁금해졌어요.

그때부터 포토샵은 그냥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뭐든 만들어볼 수 있는 도구처럼 느껴졌어요.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디자인해본 건 생일 초대장이었어요

초등학생 때는 생일이 다가오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하는 일이 흔했어요.

저도 친구들을 초대해야 했는데 그냥 말로 초대하는 건 왠지 재미가 없었어요.

조금 특별하게 하고 싶었죠.

 

마침 제가 포토샵을 할 줄 알게 됐잖아요.

그래서 생일 초대장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색을 넣고, 글씨도 꾸미고, 이것저것 장식을 넣어서 초대장을 만든 다음 인쇄해서 친구들에게 나눠줬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해주는 거예요.

어떻게 만들었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예쁘다고 해주기도 하고요.

저는 그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그냥 혼자 컴퓨터 앞에서 만들던 게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물건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느꼈던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볼펜띠도 만들고 친구들 사진도 꾸며줬어요

초대장을 만든 뒤부터는 점점 만들 수 있는 게 많아졌어요.

그때는 볼펜이나 연필에 이름표처럼 둘러서 붙이는 ‘볼펜띠’도 엄청 유행했거든요.

그것도 직접 만들어서 출력한 다음 볼펜에 돌돌 감아 쓰고, 친구들 것도 만들어줬어요.

 

친구들 사진을 받아서 예쁘게 꾸며주기도 했고요.

지금 보면 굉장히 소소한 것들이지만 그때 저는 그런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무언가를 만들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그 사람이 좋아해주는 게 좋았어요.

생각해보면 지금 제가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재미랑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장난감이었던 포토샵이 제 인생 한가운데로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정말 그림판 대신 쓸 새로운 장난감 정도였어요.

그런데 계속 만지고, 배우고, 만들어보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일이 반복되면서 포토샵은 점점 제 생활 안으로 들어왔어요.

학교 숙제에도 쓰고, 친구들한테 뭔가 만들어줄 때도 쓰고, 심심할 때도 켰어요.

그때는 제가 나중에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구체적으로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너무 재미있어서 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저는 디자인을 할 때 새로운 기능을 발견하거나, 전에 없던 결과물이 나오면 어린 시절 포토샵을 처음 만졌을 때처럼 재미있어요.

8살, 9살짜리였던 제가 영어 메뉴를 하나씩 눌러보면서 놀던 그 시간이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셈이죠.

 

가끔 생각하면 정말 신기해요.

아빠가 그날 그림판 대신 포토샵을 한번 해보라고 하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었을까요?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사소해 보였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클릭은 그날 시작됐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