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때 저는 이누야샤를 정말 좋아했어요.
그 시절 투니버스를 즐겨보던 분들이라면 아마 저랑 비슷한 추억이 있을 것 같아요!
애니메이션을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장면을 저장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예쁘게 꾸미는 것도 유행했거든요.
요즘 말로 하면 움짤인데 그때는 ‘동영상 꼬랑지’라고 불렀어요 ㅋㅋㅋㅋㅋ
저도 이걸 정말 많이 만들었어요.

아드레날린으로 장면을 캡처해서 GIF를 만들었어요
제가 당시 사용했던 프로그램은 '아드레날린'이라는 동영상 플레이어였어요.
영상을 틀어놓고 원하는 장면을 캡처하고, 조금 넘겨서 또 캡처하고.
그렇게 연속된 이미지를 여러 장 만든 다음 포토샵으로 가져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몇 초짜리 GIF 이미지 하나 만들겠다고 꽤 번거로운 일을 하고 있었죠.
이미지 순서를 맞추고 속도를 조절해서 GIF로 저장하면 작은 이미지 안에서 장면이 움직였어요.
어디부터 잘라야 자연스러운지, 반복됐을 때 어디에서 끊어야 덜 어색한지도 계속 보게 됐고요.
그때는 제가 영상 편집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이누야샤 움짤 만드는 중학생이었을 뿐이고요.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장면을 고르고,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순서와 속도를 조절하는 편집의 기본적인 감각을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고 싶어서 만든 게 아니라, 만들고 싶어서 배웠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배울 때 이런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포토샵 자체를 잘하고 싶어서 기능을 처음부터 공부한 게 아니었어요.
생일 초대장을 만들고 싶어서 필요한 기능을 찾았고,
친구들 사진을 꾸며주고 싶어서 또 다른 기능을 배웠고,
중학생 때는 동영상 꼬랑지를 만들고 싶어서 GIF 만드는 방법을 찾아봤어요.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이 만든 걸 보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지?’ 싶으면 검색해보고
안 되면 포토샵 메뉴를 이것저것 눌러봤어요.
그러다 원하는 기능을 발견하면 또 다음 작업에 써먹고요.
공부한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는데 그렇게 몇 년을 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게 많아졌어요.
지금도 새로운 프로그램을 배울 때 기능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것보다는
만들고 싶은 걸 하나 정해놓고 필요한 기능을 찾아가며 익히는 편인데 아마 이때부터 생긴 습관인 것 같아요.
학교 발표자료도 그냥 만들면 재미가 없었어요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에서 PPT로 발표할 일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저는 기본 템플릿에 글씨와 사진만 넣는 게 영 재미가 없는 거예요.
표지도 따로 만들고 싶고, 제목도 꾸미고 싶고, 사진도 그냥 넣기보다는 조금 손봐서 넣고 싶었어요.
그래서 포토샵으로 이것저것 만들어 PPT에 넣곤 했어요.
지금 보면 정말 소소한 작업이었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차이도 꽤 눈에 띄었어요.
수행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하고, 친구들이 제가 만든 걸 예쁘다고 해주는 일도 생겼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내가 이거에 좀 소질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직 디자이너라는 직업까지 연결해서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컴퓨터도 좋아하고, 포토샵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도 좋아하는 학생 정도였죠.
고등학교 축제 포스터를 만들면서 진로가 선명해졌어요
고등학교에 가서는 포토샵을 사용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어요.
중학교 친구들과 떨어져 새로운 학교에 갔는데 학교생활에 큰 재미를 못 느꼈거든요.
그럴 때 제가 제일 오래 붙잡고 있던 게 컴퓨터였고, 그중에서도 포토샵이었어요.
그러다 학교 축제 포스터 공모가 열렸어요.
당연히 참가했어요.
지금 다시 본다면 아마 굉장히 학생다운 디자인일 거예요.
눈에 띄는 효과 이것저것 넣고, 제가 알고 있는 포토샵 기능은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ㅋㅋㅋ
결과는 떨어졌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크게 속상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만드는 동안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것저것 바꿔보고, 다시 만들고, 조금 더 나아 보이는 방법을 찾아보는 과정 자체가 좋았어요.
공모전 결과보다 그 감정이 더 기억에 오래 남아있어요.
아마 그때 처음으로 꽤 확실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오... 나 이런 걸 계속하면서 살고 싶다.
취미였던 것들이 어느 순간 진로가 되어 있었어요
그 뒤로 디자인 관련 학과를 찾아보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제 진로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생 때 처음 포토샵을 만난 것부터 시작해서 친구들 사진을 꾸며주고, 초대장과 볼펜띠를 만들고,
중학생 때는 아드레날린으로 이누야샤 장면을 하나씩 캡처해 동영상 꼬랑지를 만들고,
PPT도 굳이 포토샵까지 열어서 꾸미고,
고등학생 때는 축제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당시에는 이걸 하나로 묶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전부 그냥 제가 좋아서 하던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결국 그 시간이 쌓여서 디자인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나중에는 정말 디자이너가 됐어요.
가끔 생각하면 좀 웃겨요.
몇 초짜리 이누야샤 GIF 하나 만들겠다고 영상을 멈춰가며 캡처하던 중학생이
몇 년 뒤에는 학교에서 영상과 디자인을 배우고, 디자이너라는 직업까지 가지게 되었잖아요? ㅎㅎ
그때의 저는 당연히 그걸 몰랐어요.
그냥 재미있어서 만들고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제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는 이미 꽤 오래전부터 티가 나고 있었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