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인데 카피까지 써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꽤 많았어요.
사실 처음부터 제가 문구까지 쓰게 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기획자가 카피 주면 저는 그걸 예쁘게 디자인하면 되는 줄 알았거든요.
저만 그렇게 겪었는지 모르겠지만 실무는 그렇게 딱딱 역할이 나뉘어 있지 않더라고요..?
특히 이벤트 페이지나 배너 작업할 때 그랬어요.
기획서에 문구가 있긴 한데 너무 길거나, 배너에 넣기에는 글자 수가 너무 많거나.
좀 심한 경우에는 메인 화면에 쓰기에는 힘이 약하거나.
반대로 전달해야 할 내용이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나 싶은 경우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랜딩페이지에서는 두세 줄로 설명할 수 있는 문구가 배너에서는 한 줄 안에 들어가야 할 때가 있거든요.
이런 경우에는 결국 제가 뜻은 그대로 두고 문장을 줄이게 됩니다.
(나도 못하는 다이어트를 여기에서 해버린다는게 아이러니..)
또 이벤트 페이지 만들다 보면 당시 유행하는 표현을 살짝 섞어서 재밌게 보여주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너무 딱딱한 문구보다 짧고 기억에 남는 말이 메인 비주얼에 훨씬 잘 붙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렇게 조금씩 건드리다 보니까 어느 순간
헤드카피는 얼마나 짧아야 보기 좋은지, 바디카피는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버튼 문구는 뭘 써야 바로 이해되는지 그런 것들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기준이 생기더라고요.
물론 저는 카피라이터가 아니지만, 어쨌든 디자인을 하면서 문구를 같이 만져야 했던 사람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카피 전문가의 글쓰기 방법보다는, 디자이너인 제가 실제 작업하면서 문구를 어떻게 다뤘는지 이야기해보려고 해요.
1. 헤드카피는 욕심내지 않고 짧게
제가 신입 때 했던 실수 중 하나가 메인 카피에 설명을 너무 많이 넣는 거였어요.
이 제품의 장점도 말하고 싶고, 걸려있는 행사 혜택도 다 보여주고 싶고.
그러면서 브랜드 느낌도 챙기고 싶고, 기획서에 있는 핵심 내용도 빠뜨리고 싶지 않고.
그걸 한 문장에 다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결과가 메인카피가 아니라 그냥 본문이 됩니다.
특히 배너 작업하면서 이걸 정말 많이 느꼈어요.
가로로 긴 배너는 그나마 공간이라도 있는데 정사각형이나 작은 모바일 구좌로 가면 메인 타이틀이 길어지는 순간 답이 없어요.
글씨를 줄이면 가독성이 죽고.
줄바꿈을 계속하면 카피가 화면의 절반을 먹고.
제품을 줄이면 또 제품이 안 보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문구 자체를 줄였어요.
예를 들어 기획서에
'이번 여름 특별 프로모션 기간 동안 인기 제품을 최대 50% 할인된 가격으로 만나보세요.'
이런 식으로 적혀 있다고 해볼게요.
이걸 배너 메인에 전부 쓰지는 않았어요.
이번 행사에서 제일 강한 게 50% 할인이라면
'여름 최대 50% SALE'
정도로 먼저 보여주고 나머지 설명은 아래로 보내는 식이에요.
물론 이건 예시고 실제 작업에서는 브랜드 톤이나 이벤트 내용에 맞춰 다시 썼어요.
제가 중요하게 본 건 원래 문장을 예쁘게 고치는 게 아니라
이 문구에서 절대 없어지면 안 되는 의미가 무엇인지? 였어요.
핵심이 할인율인지, 기간 한정인지, 신제품인지, 사은품인지.
그거 하나를 먼저 남기는 거예요.
그리고 뜻이 달라질 수 있는 문구는 제 마음대로 확 줄이지 않았어요.
할인 조건이나 행사 대상이 있는 경우 괜히 문구를 짧게 만들었다가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담당자한테 '메인에는 이렇게 줄이고 조건은 아래에 붙여도 될까요?' 이렇게 꼭 확인했어요.
디자이너가 카피까지 건드린다고 해서 기획내용을 마음대로 바꾸라는 뜻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벤트 페이지 작업에서는 가끔 조금 재밌게 가도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당시 유행하는 말이나 밈을 살짝 비틀어서 메인 문구로 쓰기도 했고요.
저는 이런 걸 정말 좋아했습니다. 말장난 최고~~ㅋㅋㅋㅋ
프로모션 페이지는 상세페이지보다 분위기를 조금 더 과감하게 잡을 수 있으니까 카피도 같이 놀아볼 여지가 있었거든요.
다만 유행어를 너무 억지로 넣으면 바로 올드해 보일 수도 있어서, 브랜드 분위기랑 맞는 선에서만 썼어요.
헤드카피는 많이 설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 눈길을 한 번 잡아주는 자리라고 생각하니까 훨씬 만들기 편해졌어요.
2. 바디카피는 디자인하면서 같이 줄이기
헤드카피가 사람을 잡는 문구라면 바디카피는 그다음 내용을 이해시키는 역할을 했어요.
근데 여기에서도 기획서 문구를 그대로 복사해서 넣으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단 글이 너무 길어져요. 루즈해지죠.
기획서에서는 문장으로 설명하면 이해하기 편하니까 자연스럽게 길어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제품 기능 하나 설명하는데 '작고 가벼운 디자인으로 휴대가 편리하며 외출이나 여행 중에도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해볼게요.
내용 자체는 틀리지 않아요.
근데 상세페이지에 이미지랑 같이 들어갔는데 옆에서 이미 사람이 제품을 가방에 넣고 있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면요?
이미지가 절반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럼 글까지 똑같이 길 필요가 없어요.
저는 이런 경우 '작고 가벼워 어디서나 간편하게'처럼 줄이거나,
헤드카피에서 '가볍게 어디든' 같은 메시지를 먼저 보여주고 바디에서는 실제 크기나 무게 같은 정보만 추가하는 식으로 나눴어요.
디자인을 하다 보면 글이 길어서 화면이 답답한 경우가 진짜 많거든요.
신입 때는 그럴 때 폰트부터 줄였습니다. 생각하는게 신입답죠? ^_^ 히히.
글이 많네? 글씨 작게.
그래도 많네? 행간 줄이기.
그래도 안 들어가? 텍스트 박스를 좀 더 키워보자!
....ㅎㅎ.. 아 부끄럽다. 지금 생각하면 문장부터 손봤어야 했어요.
그 뒤로는 글자가 너무 많아지면 디자인으로 억지로 해결하기 전에
'이 문장에 중복된 내용 없나?'부터 봤어요.
이미 이미지에서 보여주는 내용.
바로 위 헤드카피에서 말한 내용.
제품명만 봐도 알 수 있는 내용.
비슷한 의미를 두 번 설명한 문장.
이런 걸 덜어내면 생각보다 많이 줄어들더라고요.
특히 상세페이지는 아래로 계속 읽어 내려가니까 한 섹션에서 모든 걸 다 설명할 필요도 없었어요.
앞에서는 장점을 짧게 말하고,
다음 영역에서 구체적인 기능을 보여주고, 스펙이 필요하면 뒤에서 정리해도 됩니다.
한 화면에서 모든 설명을 끝내겠다고 하면 결국 또 글자가 깨알처럼 작아져요.
그리고 저는 제품을 잘 모를 때 문장을 멋대로 줄이지 않았어요.
기능이 헷갈리면 바로 싶으면 담당자한테 물어봤어요.
특히 전자제품은 비슷해 보이는 표현이라도 실제 스펙 의미가 다를 수 있거든요.
디자인은 예뻐졌는데 제품 설명이 틀려버리면 그때부터 소비자 클레임 천국이에요.
CS 담당자들의 원망어린 눈빛을 볼 수 있답니다...
그래서 저한테 바디카피 줄이기는 글솜씨보다는
필요한 내용은 남기고 이미 보여준 내용은 덜어내는 작업에 가까웠어요.
3. CTA는 바로 이해되고 클릭할 수 있도록
제가 예전에 CTA 버튼 문구를 정할 때 별 생각이 없었던 적이 있어요.
그냥
'자세히 보기'
'MORE'
'VIEW'
이런 걸 많이 썼거든요.
깔끔하고 디자인하기도 편하잖아요. (당당)
근데 이벤트나 프로모션 페이지를 오래 만들다 보니까 버튼은 멋있게 쓰는 것보다 눌렀을 때 뭐가 일어나는지 바로 알게 쓰는 게 훨씬 낫더라고요.
쿠폰을 받는 버튼이면 '쿠폰 받기'
제품 상세로 가는 버튼이면 '제품 보러가기'
행사 참여 페이지로 가는 버튼이면 '이벤트 참여하기'
회원가입이면 '회원가입하고 혜택 받기' 이런 식으로요.
버튼 하나 보고도 누르면 어디로 가는지가 어느 정도 예상돼야 했어요.
저도 예전에 디자인 톤 맞춘다고 버튼 문구까지 너무 감성적으로 쓴 적이 있었는데요.
예쁘기는 한데 이걸 왜 눌러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특히 프로모션 페이지에서는 CTA가 소비자 실제 행동이랑 바로 연결되니까 더 명확하게 쓰는 편이 좋았어요.
쿠폰 혜택 설명 다 읽었는데 아래 버튼이 'MORE'면 뭐가 더 있다는 건지 애매해져요.
이걸 눌렀을 때 쿠폰을 받는 건지? 조건을 보는 건지? 사용자가 한번 더 생각해야 하잖아요.
가능하면 생각할 일을 줄여주는 게 낫다고 봤어요. 그래야 구매까지 쉽게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리고 버튼 카피도 너무 길면 안 됐어요.
제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전부 넣으면
'지금 회원가입하고 10% 할인쿠폰 받으러 가기'
이런 식으로 버튼이 문장 하나가 되어버리니까,
그럴 때는 버튼 위에서 혜택을 충분히 설명하고 CTA는 짧게 '10% 쿠폰 받기' 정도로 가져가는 식이 더 깔끔했어요.
페이지 안에 CTA가 여러 개 있다면 문구도 목적에 맞게 각각 달리 썼어요.
그리고 이건 디자인 검수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실제 링크는 꼭 눌러봤어요.
'쿠폰 받기'라고 써놨는데 상품페이지로 이동한다?
문구는 너무 정확한데 링크가 틀렸습니다. 잠재적 고객을 놓치는 일이에요.
카피랑 실제 행동까지 맞아야 CTA 작업이 끝나는 거더라고요.
결국 디자인이랑 글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어요.
저는 카피라이터가 될 생각까진 없지만...
글씨가 안 들어갈 때마다 폰트부터 줄이던 디자이너에서는 졸업했습니다 :D
이 정도면 꽤 큰 발전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