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제가 처음 발을 들인 곳은 웹디자인 회사도, 광고대행사도 아니었어요.
TV CF를 만드는 포스트프로덕션이 제 첫 직장이었어요.
지금은 상세페이지와 디지털 콘텐츠를 주로 만드는 디자이너로 오래 일하고 있지만,
사실 처음부터 웹디자이너가 될 생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거든요.
대학교에서 영상과 디자인을 함께 전공했고,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당연히 영상 쪽으로 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2D와 3D 모션그래픽, 영상 편집, VFX, 색 보정 같은 작업을 배우면서 이쪽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게 너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졸업을 앞두고 인턴으로 처음 들어간 곳이 TV 광고 후반작업을 하는 회사였던거죠.
제가 생각했던 ‘디자이너의 첫 직장’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TV에서 보던 광고를 진짜 여기서 만든다고?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때 가장 신기했던 건 제가 평소 TV에서 보던 광고들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거였어요.
촬영이 끝난 원본 영상이 들어오면 그걸 편집하고, 색을 보정하고, 필요한 그래픽이나 효과를 입히고, 마지막으로 방송에 내보낼 수 있는 하나의 광고로 완성하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학교에서도 영상 제작을 배우기는 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였어요.
학교에서는 과제를 하나 완성하는 게 목표였다면, 회사에서는 실제 광고주와 수많은 사람이 얽혀 있고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을 완성해야 했어요.
작은 수정 하나에도 이유가 있었고, 한 장면이 최종적으로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더라고요.
그때 처음 알았어요.
'TV에서 15초, 30초 정도 지나가는 광고 하나 만드는 데 이렇게 많은 시간과 사람이 들어가는구나.'
TV 광고 제작비가 왜 그렇게 많이 드는지도 조금 알 것 같았어요.
인턴이라 화려한 일만 했던 건 아니었어요
저는 인턴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당연히 처음부터 메인 작업을 맡을 수는 없었어요.
주로 선배들이 작업하기 전에 필요한 자료를 준비하거나, 반복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서브 작업을 많이 했어요.
이걸 일상생활로 치면 식당의 설거지 같은 느낌이랄까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고, 생각보다 시간도 많이 들고, 끝난 줄 알았는데 또 생기는 일.
그렇다고 의미 없는 일만 했던 건 아니에요.
오히려 그 옆에서 전체 제작 과정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걸 정말 많이 배웠어요.
하나의 광고가 촬영되고, 후반작업을 거치고, 광고주의 확인을 받고, 수정되고, 최종적으로 온에어되는 과정까지 전부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거든요.
한 가지 작업을 하면서도 배우는 게 수십 가지씩 생기는 느낌이었어요.
제 첫 작업이 네파 운동화와 현대그룹 광고였어요
제가 회사에 들어간 뒤 처음 참여했던 프로젝트 중 하나가 네파 운동화 광고였고, 현대그룹 광고 작업에도 참여했어요.
물론 제가 광고 전체를 만든 건 아니에요! 인턴이었으니까 아주 작은 부분을 맡았죠.
그런데 저한테는 그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내가 실제 광고 제작 과정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신기했거든요.
학교에서는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업했다면 이제는 진짜 전국의 사람들이 보게 될 결과물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 차이가 정말 크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드디어 제가 참여한 광고가 처음 TV에 나오던 날이 왔어요.
내가 참여한 광고가 TV에서 나오던 순간

그날 느낌은 아직도 기억나요.
평소처럼 TV를 보고 있는데 제가 회사에서 며칠 동안 계속 보고 또 봤던 장면이 화면에 나오는 거예요.
너무 익숙한데 동시에 너무 낯설었어요.
회사 모니터 안에서 계속 수정하던 영상이 갑자기 진짜 방송 광고가 되어 전국으로 나가고 있으니까요.
‘어? 이거 내가 작업하던 건데?!’
진짜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제가 작업한 비중이 크든 작든 상관없었어요.
내가 참여한 결과물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게 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성취감이었어요.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 엔딩크레딧에 자기 이름 한 줄 올라가는 걸 왜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조금 알 것 같았어요.
직접 만든 결과물에는 묘하게 애착이 생기더라고요.
매장에서 광고를 다시 만났을 때는 더 신기했어요

TV CF 하나가 만들어지면 그 광고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거기에서 이미지나 영상이 파생돼서 매장이나 온라인 등 여러 곳에 다시 활용되기도 했어요.
하루는 네파 오프라인 매장에 갔는데 큰 디스플레이에서 제가 참여했던 광고를 활용해 만든 영상이 나오고 있었어요.
그걸 발견했을 때는 TV에서 봤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어요.
사람들이 그 앞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고 있는데 저는 속으로
‘엇, 이거 내가 작업한 건데!!!!’ 하고 있었어요. ㅋㅋㅋ
누구한테 말하고 싶고, 괜히 한 번 더 보고 싶고.
제가 만든 결과물이 실제 세상 곳곳에서 사용된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갑자기 현실로 느껴진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일 재미있었던 건 컬러그레이딩이었어요
회사에서 보던 여러 작업 중 제가 가장 흥미롭게 느꼈던 건 컬러그레이딩이었어요.
촬영한 원본 영상의 색감을 다듬고 원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작업인데요.
같은 장면도 색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느낌이 나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차갑고 선명하게 만들 수도 있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로 바꿀 수도 있고요.
디자인을 좋아하는 제 입장에서는 색으로 영상의 분위기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무엇보다 전문 장비들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컬러룸은 어두운 암실에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2개 있었어요.
왼쪽은 촬영 원본, 오른쪽은 작업 후 보이는 수정본인데 그 앞에 기계 패널도 잔뜩 있었거든요.
그당시 컬러그레이딩 담당자 분이 설명해 주시는 걸 보고 듣는데, 학교 컴퓨터 앞에서 프로그램을 배우다가 실제 프로들이 사용하는 작업 환경을 처음 봤으니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ㅋㅋㅋ
저도 언젠가는 저 자리에 앉아서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학교에서 잘하는 것과 회사에서 잘하는 건 다르더라고요
인턴 생활을 하면서 크게 느낀 게 하나 있었어요.
학교에서 과제를 잘했다고 해서 회사에서도 바로 일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학교에서는 내 작업물 하나만 잘 만들면 됐지만 회사에서는 일정도 맞춰야 하고, 다른 사람의 작업과 연결도 되어야 하고, 수정 요청에도 바로 대응해야 했어요.
제가 맡은 작은 작업이 늦어지면 그다음 작업을 해야 하는 사람이 기다려야 했고요.
처음으로 ‘협업’이 진짜 어떤 건지 알게 된 것 같아요.
디자인 실력만큼 작업 속도와 정확성,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는 걸 이때 처음 몸으로 배웠어요.
멋있기만 한 세계는 아니었어요
물론 광고 제작 현장이 매일 감동적이고 멋있기만 했던 건 아니었어요.
현실은 꽤 고되고 치열했어요.
방송 일정이 정해져 있으니 시간이 부족한 경우도 많았고, 광고주 확인 일정 때문에 야근이나 주말 출근이 생길 때도 있었어요.
특히 광고주를 모셔서 1차 작업물을 확인하는 '시사' 날에는 모든 직원들이 비상사태처럼 움직여야 했어요.
지금처럼 AI가 많은 작업을 도와주는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해야 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도 당시의 저는 그런 현실까지 포함해서 현장이 정말 신기했어요.
학교 밖에서 처음 만난 진짜 디자인 세계였으니까요.
다만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서 저는 한 가지 고민을 하게 됐어요.
‘내가 정말 이 생활을 오랫동안 계속할 수 있을까?’
그 질문 때문에 결국 제 진로는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크게 바뀌게 됐어요.
하지만 그건 조금 뒤의 이야기예요.
제 첫 사회생활이 TV CF를 만드는 포스트프로덕션이었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에요.
비록 그곳에서 짧은 인턴 생활만 해봤지만, 내가 만든 결과물이 실제 세상에 나가는 기분이 어떤지 처음 알려준 곳이었어요.
지금은 하나의 디자인을 만들면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유튜브나 SNS, 블로그처럼 여러 채널에 맞춰 다시 만들어지고 활용되다 보니 예전보다 제 작업물을 마주칠 일이 훨씬 많아졌답니다.
제 디자인을 마주할 때마다 '아이구 이쁜 내 새끼 여기에도 있네!' 하며 보고 있어요 ㅋㅋㅋㅋ
지금은 이런 일이 익숙해졌지만,
결과물이 실제로 사용되는 모습을 보면 그때 TV에서 처음 광고를 봤던 순간이 가끔 떠올라요.
'내가 만든 게 세상 밖으로 나왔구나!' 하던 그 때가요.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감정 중 하나는 아마 그때 처음 배운 것 같아요.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변치 않을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