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자주 생기는 상황이 있어요.
클라이언트는 분명히 원하는 방향이 있어서 요구하는데,
디자이너 눈에는 음... 이대로 하면 별로일 것 같은데...? 싶을 때요. ㅋㅋㅋ
색을 더 많이 넣어달라고 하거나,
모든 글씨를 크게 해달라고 하거나,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맨 위로 올려달라고 하거나,
이미 충분히 화려한데 뭔가 더 넣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처음 일할 때는 이런 요청을 받으면 고민이 많았어요.
클라이언트가 돈을 주고 의뢰한 사람이니까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나?
아니면 디자이너니까 안 좋은 방향은 말려야 하나?
오래 일하면서 제가 정착한 방법은
무조건 거절하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왜 이 방향이 더 좋은지 설명하고, 가능하면 다른 방법까지 같이 보여주는 거예요.
제가 실제로 클라이언트와 의견이 다를 때 사용했던 방법들을 정리해볼게요.
1. 일단 왜 그렇게 요청했는지부터 물어보세요
클라이언트 요청만 들으면 '도대체 왜 저걸 원하는 거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이유를 물어보면 의외로 이해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이 문구를 제일 크게 넣어주세요.' 라고 했을 때
단순히 큰 글씨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번 캠페인에서 반드시 강조해야 하는 메시지일 수도 있어요.
'빨간색으로 바꿔주세요.' 라는 요청도 그냥 빨간색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행사 컬러를 맞춰야 하거나, 경쟁 제품 사이에서 더 눈에 띄어야 한다는 목적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요청을 받으면 바로 수정부터 하기보다 왜 이걸 바꾸고 싶은지 먼저 확인하는 편이에요.
이유를 알아야 그 목적은 살리면서 더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거든요.
2. '디자인적으로 안 예뻐요' 보다 왜 문제가 되는지 설명하세요
디자이너 눈에는 너무 당연한 것도 클라이언트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어요.
사실 이런 경우가 정말 많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면 안 예뻐요.', '제가 보기에는 별로예요.' 이렇게 말하면 설득력이 약해요.
결국 취향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거든요.
저는 가능하면 디자인 문제가 실제 화면에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설명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모든 문구를 크게 해달라는 요청이라면
'모든 요소가 같은 크기로 강조되면 시선이 분산돼서 어떤 내용을 먼저 봐야 하는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고,
내용을 너무 많이 추가하려는 상황이라면 '첫 화면에 정보가 너무 많아지면 제품보다 문구가 먼저 보여서 핵심 기능이 묻힐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설명도 가능해요.
가독성, 정보 전달, 시선 흐름, 제품 강조처럼 실제로 디자인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설명하면 대화가 훨씬 쉬워져요.
3. 말로 설명하기 어려우면 직접 보여주세요
디자인은 아무래도 눈으로 보는 작업이잖아요.
그래서 아무리 열심히 설명해도 말만으로는 잘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백문이 불여일견, 차라리 간단하게 두 가지 방향을 보여주는 게 빨라요.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방향과 제가 추천하는 방향을
둘 다 러프하게 만들어서 비교하는 거예요.
저는 이런 방식을 꽤 좋아해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두 개를 나란히 보여주면서
'이쪽은 정보가 한꺼번에 보여서 조금 복잡하고, 이쪽은 핵심 내용부터 볼 수 있게 순서를 정리했습니다.' 설명하면 바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디자이너는 이미지로 이야기하는 사람이니까 설득할 때도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써먹어봅시다!
4. 레퍼런스를 같이 보여주면 설명이 쉬워져요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때 제가 많이 사용하는 것 중 하나가 레퍼런스예요.
'다른 기업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실제 사례를 같이 보여주면
내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주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쉬워져요.
예를 들어 메인 화면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면
비슷한 제품군의 상세페이지를 몇 개 보여주면서 제품 이미지를 크게 쓰고, 메인 카피는 짧게 잡고, 나머지 기능은 아래에서 설명하는 구조를 보여줄 수 있어요.
폰트나 색상, 레이아웃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이렇게 하는 게 예뻐서요.' 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비슷한 제품들이 어떤 방식으로 정보를 정리하고 있는지 같이 보여주면서 현재 제품에는 어떤 방향이 더 잘 맞는지 설명하는 편이 훨씬 수월해요.
레퍼런스는 디자인할 때만 쓰는 게 아니라 설득할 때도 정말 유용합니다.
5. 무조건 반대하지 말고 요청의 목적은 살려주세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막아버리면 대화가 어려워질 수 있어요.
저는 가능하면 요청한 이유는 살리고 표현 방법을 바꾸는 쪽을 먼저 생각해요.
예를 들어 할인이나 사은품 같은 이벤트 내용을 상세페이지 메인에 크게 넣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해볼게요.
저는 이런 경우 상세페이지 안에 바로 넣기보다 별도의 프로모션 배너를 만들어 위에 얹는 방법을 제안하는 편이에요.
많은 업체들이 시기마다 할인, 쿠폰, 사은품, 신제품 출시, 시즌 이벤트처럼 프로모션 내용을 계속 바꾸잖아요.
이벤트가 바뀔 때마다 상세페이지 원본을 열어서 수정하고 다시 등록할 수는 없으니까요.
상세페이지 자체는 제품 정보 중심으로 그대로 유지하고,
상단에 붙는 프로모션 배너만 교체하면 관리하기도 훨씬 편해요.
실제로 많은 업체들이 이런 포맷을 사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클라이언트에게도 그런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이 내용은 상세페이지 안에 넣기보다 이벤트 배너로 따로 만들어두면 다음 프로모션 때도 교체해서 쓰기 편합니다.' 이런 식으로 제안하는 편이에요.
또 특정 문구를 꼭 강조해야 한다면 글자를 무작정 크게 만들기보다
색상, 굵기, 배경 박스, 아이콘 같은 요소로 눈에 띄게 만들 수도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건 사실 '글자를 크게 만들어주세요.' 자체가 아니라
그 내용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요청한 방법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결과가 뭔지를 먼저 보면 다른 방법이 꽤 많이 보여요!
6. 가능하면 대안을 같이 제시하세요
저는 수정 요청을 받았을 때 결과가 별로일 것 같다면
'요청하신 수정사항을 반영하면 이런 문제가 생길 것 같은데, 대신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까지 같이 이야기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제품 이미지를 더 작게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는데 제품 존재감이 너무 약해질 것 같다면
제품 크기는 유지하면서 카피 위치나 주변 여백을 조절하는 방법을 제안할 수 있어요.
색상을 너무 많이 추가하려는 경우에도
컬러를 전부 사용하는 대신 메인 컬러와 보조 컬러를 나눠서 쓰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고요.
문제만 이야기하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무시당했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불필요한 감정소모는 하지 말아야겠죠?!)
그러니 대안까지 같이 가져가면 단순히 요청을 막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어요.
7. '뭔가 좀 더...'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도 있어요
디자인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난감한 수정 요청이 하나 있습니다.
'전체적인 건 마음에 드는데요....'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뭔가... 조금만 더 어떻게 안 될까요?'
예....??? ㅠㅠㅠㅠ 뭘 어떻게요...? ㅋㅋㅋㅋ큐ㅠㅠㅠㅠ
말하는 사람 머리에도 물음표,
듣는 디자이너 머리에도 물음표가 뜨는 순간이에요.
그런데 이런 요청을 여러 번 받아보니까
클라이언트가 디자인 전체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어딘가 조금 아쉽다고 느끼는데
그 부분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어요.
이럴 때 저는 디자인 전체를 갈아엎기보다 포인트가 될 만한 부분부터 하나씩 바꿔보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1번 방법. 꾸밈 요소로 사용한 폰트를 조금 더 특징 있는 폰트로 바꿔보거나
2번 방법. 제가 정보가 많다고 판단해서 여백의 미로 남겨둔 부분을 조금 더 채워보기도 하고요.
3번 방법. 글씨로만 설명되어 있던 부분을 그래프, 아이콘, 인포그래픽, 간단한 도식처럼 시각적인 요소로 바꿔서 포인트를 만들어주기도 해요.
경험상 이런 식으로 한두 군데 포인트를 주면서 손을 보면
'맞아요! 제가 원한 게 이런 느낌이에요!!!' 하고 해결되는 경우가 꽤 있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설명해 주시면 참 좋겠지만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가 아니기 때문에 간단한 레이아웃 구성도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고
또 본인이 느끼는 아쉬움을 디자인 용어로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뭔가 허전해요.'
'조금 더 고급스러웠으면 좋겠어요.'
'한 끗이 부족한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그 말을 붙잡고 멍하니 고민하기보다
화면에서 시선이 멈출 포인트가 부족한지,
여백이 클라이언트 눈에는 너무 비어 보이는지,
텍스트 위주라 화면이 단조로운지,
폰트나 그래픽 요소에 특징이 부족한지
하나씩 확인해보세요.
클라이언트가 '여기 정보 인포그래픽으로 넣고 이 폰트 바꿔주세요.' 이렇게 정확하게 말해주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요청하시는 분은 흔치 않으니 우리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바꿔서 제안해봅시다.
8. 클라이언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을 찾아보세요
사람마다 디자인을 보는 기준이 꽤 달라요.
어떤 클라이언트는 깔끔한 디자인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정보가 많은 걸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제품이 크게 보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경쟁사보다 화려해야 만족하기도 해요.
몇 번 같이 작업하다 보면 이 사람이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조금씩 보여요.
저는 이런 기준을 기억해두는 편이었어요.
그러면 다음 작업에서는
처음부터 그 사람의 선호를 어느 정도 반영하면서 제가 생각하는 디자인 방향을 같이 섞을 수 있어요.
매번 수정하면서 서로
음.. 저.. 이게 아니고요...
어... 그... 이것도 아니고요...
할 필요가 줄어드는 거죠. ㅋㅋㅋ
특히 장기적으로 같이 일하는 클라이언트라면
이런 취향과 기준을 파악해두는 게 작업 속도에도 꽤 도움이 돼요.
9. 모든 걸 설득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디자이너 입장에서 이게 더 낫다고 생각해도
클라이언트가 끝까지 다른 방향을 원할 수 있어요.
이유를 설명하고, 대안을 보여주고,
그래도 클라이언트가 '아니요. 저는 원래 방향으로 해주세요.' 라고 한다면
결국 요청한 방향으로 진행해야 할 때도 있어요.
저도 그런 경우 많았어요.
속으로 내 예쁜 시안 안녕... 하고 보내줍니다 ㅋㅋㅋㅋㅋ 어쩌겠어요!
디자이너가 의견을 내는 건 중요하지만 모든 프로젝트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 수는 없어요.
충분히 설명했다면 어느 순간에는 클라이언트의 결정을 존중하고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도 실무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10.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기록을 남겨두는 편이 좋아요
디자인 취향 정도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잘못된 정보, 규격 오류, 제품 스펙 오류, 브랜드 가이드 위반처럼
실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있는 요청은 조금 달라요.
이럴 때는 왜 확인이 필요한지 이야기하고
메일이나 메신저처럼 기록이 남는 방식으로 한 번 정리해두는 편이 좋아요.
예를 들어
'해당 내용은 기존 제품 스펙과 다르게 표기되어 있어 확인 후 반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디자이너가 최종 결정권자가 아닌 경우도 많지만 내가 발견한 문제는 최소한 한 번 확인하고 넘어가는 편이 좋아요.
저는 디자인 작업을 마무리 할때까지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편이었어요.
분명 디자이너로 입사했는데 어느 순간 숫자 검수에 진심인 사람이 됩니다. 그만큼 중요해요!
11. 수정이 반복된다면 처음 방향을 잡는 과정부터 바꿔보세요
클라이언트와 의견 충돌이 한두 번이 아니라 프로젝트마다 계속 반복된다면
수정 단계보다 더 앞쪽을 한번 점검해 봐야 해요.
처음부터 원하는 분위기,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요소, 싫어하는 스타일,
가장 강조해야 하는 내용, 참고하고 싶은 레퍼런스 같은 걸 충분히 확인했는지 보는 거예요.
저는 디자인을 다 만든 뒤 '제가 생각한 느낌이 아니에요.' 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초반에 레퍼런스를 보면서 방향을 맞추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러프한 메인 비주얼이나 간단한 무드 방향을 먼저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고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걸 100% 머릿속으로 읽을 수는 없으니까요.
12. 설득을 잘하면 다음 작업도 편해져요
처음에는 클라이언트가 '왜 디자이너가 내가 해달라는 대로 안 하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몇 번 작업하면서 이유를 설명하고,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실제로 결과물이 괜찮게 나오는 경험이 반복되면 조금씩 디자이너의 의견을 먼저 물어보는 경우도 생겨요.
'이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디자이너님이 보기에는 어떤 게 더 나아요?'
이런 식으로요.
개인적으로 저는 이 단계가 되면 작업하기가 굉장히 편했어요.
클라이언트도 원하는 걸 이야기하고 저도 디자인 관점에서 의견을 내면서 같이 방향을 정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오래 같이 일했던 클라이언트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시키는 대로 만드는 관계라기보다
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작업하는 관계에 가까웠어요.
13.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것만큼 설명하는 것도 필요해요
회사생활이나 프리랜서를 오래 하다 보면 디자인을 잘 만드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순간이 정말 많아요.
왜 이걸 이렇게 배치했는지,
왜 이 색을 줄여야 하는지,
왜 이 문구를 더 짧게 해야 하는지,
왜 이 내용을 첫 화면에서 빼는 게 좋은지.
그걸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야 할 때가 계속 생겨요.
특히 클라이언트나 다른 부서는 디자이너와 같은 기준으로 화면을 보고 있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디자인을 만드는 능력만큼,
내가 만든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능력도 실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과 내 생각이 다를 때는 바로 수정하거나 무조건 안 된다고 하기 전에 왜 그런 요청을 했는지부터 한번 확인해보세요.
직접 비교해서 보여주고, 레퍼런스를 가져오고, 목적을 유지하면서 다른 방법을 제안하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도 챙기고 디자인도 덜 망가지는 타협점을 생각보다 자주 찾을 수 있어요.